저명 방문교수 이승만박사

저명 방문교수 이승만박사

By 함승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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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 하시는도다 (고후 5:14)

콜롬비아 신학대학원에 방문교수로 오신 이승만 박사님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사님은 1931년도 평양에서 목회를 하신 이태석 목사님과 김송희 어머님의 아들로 태어나셨읍니다.  일제시대 탄압을 이겨내시고 고난을 극복하는 신앙과 헌신적인 삶을 사시는 부모님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잘아왔습니다.

그는 13살때에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후 민족이 갈라지고 분단의 아픔속에서 평양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는 공산치하에서 기독교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버리지 않고 지켜나가시는 아버지께서 순교당했을때 아버지 시신앞에서 왜 하나님이 선택하신 성도들이 핍박을 받아야하며 순교를 당해야하는지를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울부짓는 아픔을 겪어야 했읍니다.

1950년 겨울 전쟁중에 두 아들의 생명을 유지하기위한 어머님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서12월 3일 추운 겨울날19살인 그와 17세였든 남동생 둘이서 남으로 피난길에오르게 되였읍니다.  그때 집을 떠나기전에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잊을수 없는 약속의 말씀이였읍니다.   “우리가 전쟁속에서 어떠한 어려움을 당할런지 알수없고 우리가 언제 다시 육신적으로 만날수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어디로 가든지 무슨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 기도 함으로써 기도속에서 만나자!” 하셨던 말씀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살아오는 삶의 기초가 되여왔읍니다. 집을 떠나 한달동안 걸어서 진해에 도착하여 해병대 6기로 입대 하였다.

북한의 학생들이 모두 러시아말을 배우고 있을때, 아버님께서 영어를 가르켜 주셔서  공부한 덕택에 많은 혜택을 얻게되였다. 한국해병대에서 영어시험에 합격하여 선택이되어 1953년에 미국 와싱턴 근처 콴티코(Quantico)에 있는 미해병학교에서 8개월동안 교육을 받는 기회가 주어진것을 특별한 하나님의 축복이였다.   거기서 훈련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1955년 가을에 해병대에서  제대하고 ’56년 1월에 미국으로 유학하게되였다.   미해병학교에서 공부할때 친하게 지냈든 Hanson(핸슨) 소위의 도움을 받아 그의 보증과 스폰서로 맨손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West Virginia의 Elkins 에 있는 Davis & Elkins College 에 오게 되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루이빌 신학교에서 M Div.를 마치고 1960년에 PCUSA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이승만목사는 시카고 신학교에서 종교사회학으로 박사학위(Doctor of Religion)를 받고 루이빌 대학에서 10년동안 교목생활을 하면서 Campus Ministry와 가르치는 사역을 해왔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33)

1960년초부터 미국 각지에서 흑인인권운동 (Civil Rights Movement)이 활발히 진행되어오고 있었다. 흑인들은 식당과 호텔에도 들어 갈수도없는 차별을 받는 인권의 억압을 받는 시대였다. 이승만 목사는 인종차별은 하나님 뜻에 어근나는 사회죄악임을 확신하고 흑인학생들과 백인교수들과 목사들과 함께 흑인차별법을 개정하기위한 데모에 적극 참여 하였다.  “왜 동양인이 흑백문제에 뛰어들으냐” 하는 피판적인 소리를 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이목사에게는 인권문제는 백인과 흑인간의 문제 뿜만이 아니라 교회전체에 문제임을 확신하여 흑인인권운동에 적극 가담했든것이다.

특히 그는 흑인인권운동을 통하여 마틴루터킹목사를 만나게되고  그의 가르침을 통해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였다.  마틴루터 킹목사의 주장은  흑인인권운동은 다만 억압받던 흑인들을 해방시키는 운동일뿐만 아니라 탄합자인 백인들도 그들의 잘못된 차별의식과 제도에서 해방시켜, 흑인들과 백인들이 힘을 합하여 평등과 정의로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운동이라고 주장 하였다. 한거름 더 나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 key 는 탄압받은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였다. 억압을 받은 자들에게 원수를 갚을 가능성과 용서를 하는 가능성이 주어지기 때문이였다.

이승만 목사는 아버지의 순교후에 북한정권에 대한 울분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틴루터킹의 말씀을 받고 그동안 가지고 있던 복수하고자했던 그의 마음은 용서와 화해로 변한 계기가 됐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새로운 인생의 비전을 가지게 되였고 민족화해운동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고통을 이길수있는 믿음을 주신것은 하나님의 귀한 선물이다.  북한의 많은 어려움 속에서 어려움을 극복할수있는 믿음을 주신것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한국민족에게 주신 특별한 신앙이자 축복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사도행전 28:19-20)   

그는 1973년에 연합장로교회총회 세계선교부 직원이 되어 25년동안 시무하면서 처음 7년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과 이란, 이라크, 레바논, 애굽을 포함한 중동지역 선교책임자로, 다음 7년은 일본, 한국, 중국, 필립핀을 포함한 아시아지역 선교총무로, 그리고 다음 11년은 세계선교부의 부총무로 사역을 하였다.  특별히 북한선교에 열정을 가지시고 1978년부터 여러차례 평양방문을 하여 교회재건과 남북 화해운동을 하였으며 북한 평양봉수교회 설립에 산파역할을 하여 북한정부에 교회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확산에 기여하셨다.

이승만 목사는 1998년에 총회에서 은퇴를 하시고 Richmond, Virginia 에 있는 유니온장로교 신학교에서 선교학 교수로 사역하셨고 Asian American Ministry를 통하여 많은 후배들을 양성 하시고 작년에 은퇴를 하셨다.   금년 여름에 Atlanta로 이사오셔서 CTS 요청으로 콜럼비아신대원에 Distinguish Visiting Professor for Global Leadership Development로 오시게 되였다.   허정갑교수님이 해오신 Korean American Ministries 사역을 하시고  앞으로의 계획은 세계교회의 지도자 양성을 위해 사역을 하실 계획이다.

그가 1992년-93년도에 NCCUSA(미국교회전국연합회) 회장으로 역임하고 있을때 클린턴 대통령이 각 종교계지도자들을 초청해서 국내의 정책과 세계정책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계기로 클린턴 대통령시절에 미국 백악관 종교 자문위원으로 일을 하였다.  그가 일하면서 남북개선과 미국,북한과의 개선문제에서 가장중요하게 주장한것은 다시는 절대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였다.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평화적으로 한반도문제를 풀어가야 된다는 주장을 전달하였다.

이승만목사님의 인터뷰를 마치면서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스토리중에 이 말씀이 제 마음속에 계속해서 남습니다.  아버지의 시체앞에 울부짖었던때 왜 의인들은 그렇게 고통을 당해야하고 악인은 성행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계속해서 질문을 드릴때 나즈막한 하나님의 음성이 콜링으로 목사님의 마음을 움직이셨다고 한다. “49살의 젊은 나이로 순교를 하지 않으면 안될 더 큰 이유가 있느니라! 나의 일을 다하지 못하고 가신 아버지의 뒤를 따라 가야되지 않겠느냐!”

 

이승만 박사 약력

미국장로교(PCUSA) 제 212대 총회장 역임(2000-2001),  미국교회협의회 (NCCUSA) 회장 역임, 미주한인동포전국협회(NAKA)회장 역임, 대한민국 해병대 근무,   데이비스 앤 앨킨스 대학 졸업, 루이빌 신학교 졸업 (M.DIV), 예일대학교 신학부 졸업(STM), 시카고 신학교 박사학위(Doctor of Religion), 루이빌 대학 강사 및 교목 역임, 25년간 미국장로교 선교부 부총무, 중동 및 아시아 지역 총무 역임, 버지니아 유니온 신학교교수,  마틴루터 킹 목사와 함께 민권운동 참여, 1978년부터 여러번 평양 방문하여 남북화해운동 주도, 북한교회재건에 기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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